제우스의 연인들 #10 : 당신의 아들을 사랑했으나...
어머니 레아께, 이 편지를 드릴 자격이 제게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그 아이를 낳으신 분이기에—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제 마음을,당신께만은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어쩌면,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이기에, 왕이기에,저는 그의 곁에 있어야 했고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승리한 여자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그의 사랑은 늘 저를 피했습니다.그는 수없이 많은 여인들을 품었고,그 수만큼의 이름들이 저의 귓가를 때렸습니다. 이오, 레토, 다나에, 세멜레, 레다, 에우로페, 칼리스토, 알크메네, 안티오페…그들은 때로 슬퍼했고, 때로 도망쳤으며,어떤 이들은 별이 되고,어떤 이들은 도시가 되었고,어떤 이들은 신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저는—남겨졌습니다. 황..
2025. 6. 16.
제우스의 연인들 #9 : 두 도시의 어머니, 안티오페
사티로 변한 신은 웃고 있었다.나는 그 웃음을 꿈이라고 믿었다.그날 밤, 숲은 조용했고 바람은 달콤했다.그러나 달콤함은 늘 대가를 요구했다.그의 손길은 야수의 것이었고,그의 눈빛은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저항하지 못했고,아무도 그 밤을 듣지 못했다. 나는 안티오페,보이오티아의 공주였고,이제는 혼자 속으로 터져야 하는 배를 안은 죄인이었다. 나는 달아났다.아버지의 분노는 내 살보다 빨랐고,사람들의 시선은 내 자궁보다 차가웠다.“신이 너를 건드렸다고?”“사티로? 웃기지 마. 넌 그냥—” 나는 말을 삼켰다.그 말을 받아주는 사람은내가 아닌, 내 아들들뿐이었다. 나는 낯선 나라의 포로가 되었고,디르케라는 여인의 노예가 되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잡아끌었고,내 무릎을 꿇렸고,내 침묵에 침을 뱉었다. 나는 묻지 않..
2025. 6. 9.
제우스의 연인들 #8 : 불멸을 낳은 여인, 알크메네
나는 아내였다.그리고 그날 밤까지,나는 남편만을 사랑한 여자였다. 그의 이름은 암피트리온.테바이의 왕이자, 내가 선택한 사람.그의 목소리, 손, 눈빛— 나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하지만 그날 밤,그는 달랐다. 입술의 무게가,숨결의 간격이,단 하나도 같지 않았다. 나는 알지 못했다.아니,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며칠 뒤, 진짜 암피트리온이 돌아왔다.그제야 나는 알았다.그날 밤 나를 안은 존재는, 그가 아니었다. 제우스.하늘의 신.그는 나의 믿음을 이용했고,사랑을 모방했다. 그 순간,내 몸은 벌써 아이를 품고 있었다. 나는 기도했다.이 아이가 그저, 인간이기를.그저 평범한 아이로 태어나기를. 하지만 하늘은 조용했고,신들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헤라클레스를 낳았다.그 이름은 “헤라의 영광”..
2025. 6. 2.
제우스의 연인들 #7 : 별이 된 소녀, 칼리스토
는 신을 섬기던 사람이었다.그분의 이름은 아르테미스. 그녀는 달빛처럼 냉정하고,숲처럼 순결했다. 나는 그녀의 사냥개처럼, 그림자처럼,늘 뒤를 따랐다. 그때 나는 몰랐다.신을 섬긴다는 건, 신을 믿는다는 건—모든 것을 내어주는 일이란 걸. 그날도 우리는 숲속에서 사슴을 쫓고 있었다.그리고 나는, 나무 아래서 잠들었다.그림자는 고요했고, 바람은 따뜻했다.하지만 깨어났을 때—내 곁에 있던 이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그 눈동자는 달랐다.사냥의 냉기 대신,욕망의 불꽃이 있었다.“왜…” 나는 말했지만,말은 숲 속에 묻혔다.그는 신이었고, 나는 인간이었다.거부는 늦었고,그의 손길은 나의 몸을 가로질렀다. 아르테미스는 내가 변했다는 걸 알아챘다.내 몸은 무거워졌고, 달빛은 나를 피했..
2025. 5. 26.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언덕 : 생과 지혜의 경계에서 마주한 괴물
바람이 거칠었다. 붉게 물든 언덕 위에서 짐승의 날개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흙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사람의 눈을 닮은 짐승이었다.사자의 몸과 매의 날개, 그리고 어딘가 슬픈 듯한 여인의 얼굴.그것은 언덕 위에 걸터앉아, 죽음보다 더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테바이로 가는 자여,” 그 목소리는 사람의 것이었고, 동시에 짐승의 것이었다. “내 수수께끼에 답하지 못하면—여기에서 너의 뼈는 바람에 흩날릴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말을 멈추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는 며칠째 걸어오고 있었고, 신탁은 아직도 그의 귓가에서 메아리쳤다. “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누가 아버지인지, 누가 어머니인지.다만, 진실을 마주할 두려움이 지금 눈앞에 있는 괴물..
2025.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