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가 말하는 괴물이었지.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 불사의 사자, 네메아의 지옥.
하지만 나에게도 이름이 있었다.태어났을 때,
나를 바라보던 대지의 여신이 입술을 열었지.
“레우온,” 이라고.
강철로 된 털가죽은 저주처럼 나를 감싸고,
이빨은 돌을 가르며 자라났다.
목소리 대신 울음을 가르쳐주었고,
사랑 대신 고독을 안겨주었다.
나는 말을 배운 적도, 웃음을 배운 적도 없지만,
밤이 되면 별을 보았고,
별 아래 잠든 사람의 숨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동안,
나는 그들의 따뜻한 숨결이 부러웠다.
그렇게 수많은 계절이 지나고
그날, 그는 내 앞에 섰다.
무기에 기대지 않은 두 손,
잔뜩 조여온 긴장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눈.
나는 알았다.
이 아이는 나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러 온 것이라는 걸.
싸움은 길지 않았다.
이빨도, 발톱도, 짓누르는 무게도 그를 꺾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나의 숨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숨이 막히는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온전한 침묵 속에 놓였다.
그의 눈빛은 슬픔과 경이로 가득했다.
그는 나의 가죽을 벗기기 위해 칼을 뽑았지만,
내 털가죽은 그것마저 거부했다.
그는 나를 찢기 위해 나를 입었다.
내 가죽을 뒤집어쓰고,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보려 했다.
아이야.
너는 나를 죽였지만,
결국 나로 살아가게 되었구나.
그 후로 수많은 신화가 너를 찬양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네가 처음으로 죽인 건 짐승이 아니라 고독이라는 걸.
너는 나를 이겼지만,
너의 맨살은 내가 되어버렸고,
네가 누군가를 꺾을 때마다
그들은 나의 이빨과 발톱을 기억했다.
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너는 내 이름 없는 그림자와 함께 걷고 있다.
내가 없었다면 너도 시작되지 않았겠지.
그러니 잊지 마라,
네가 세상에 처음 던진 무게는
내 심장, 내 숨결, 내 외로움이었다는 걸.
그리고 지금도 네 어깨 위에서
나는 조용히,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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