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차고 깊었다. 밤마다 너를 만나러 건너는 바다는, 이젠 내 피와 살처럼 익숙했다.
나는 헤엄을 쳤고, 헤엄을 치며 기도했지. 파도에 삼켜지지 않길. 어둠에 길을 잃지 않길.
오직 너에게, 히로에게 닿을 수 있기를. 등불을 밝혀줘, 히로.
너의 손이 닿은 등불은 나를 인도하는 별이었다.
세상의 끝이라도 나는 갈 수 있었어.
너를 향해 간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하지만 오늘 밤, 바다는 낯설다.
바람은 이상하게 매섭고, 등불은 보이지 않아.
너무 멀어진 걸까? 아니면, 불이 꺼진 걸까?
나는 한 손으로 바다를 가르고, 또 한 손으로 눈을 가린다.
물안개 사이에서 너의 모습이라도 떠오를까봐.
아니면, 다시는 널 볼 수 없을까봐.
내가 처음 너를 보았을 때는 여름이었다.
신전 너머에서 들려오던 너의 노랫소리, 햇살에 반짝이던 검은 머리카락,
그 모든 것이 내 삶을 바꿨다.
신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한다던 너는,
결국 나와 사랑에 빠졌고,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너에게 달려갔다.
신전의 높은 탑에서 등불을 들던 너.
그건 단순한 불빛이 아니었지.
그건 너의 마음이었고, 나를 부르는 너의 손길이었어.
그걸 잊을 수 있겠니?
하지만 이제, 오늘 밤. 바다는 너의 불빛 없이 너무 깊고, 너무 차갑다.
내 팔은 무거워지고, 숨은 짧아진다.
"히로…"
입술 사이로 너의 이름이 새어나오자, 바다가 그 이름마저 삼켜버린다.
아무도 듣지 못할 너의 이름,
나의 마지막 고백.
혹시 너도 나처럼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등불이 꺼진 건 너의 실수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간섭이었을까.
사랑이 죄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너와 만나 처음 알았다.
신전의 여사제가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거라고,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달았지.
파도는 이젠 내 머리 위까지 차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너의 미소도, 너의 손도.
단지 너와 함께했던 밤들의 잔상만이 내 눈에 남는다.
만약 내가 이 바다에서 사라진다면,
너는 나를 기다릴까.
탑 위에서 끝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내가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릴까.
그래, 그럼 괜찮아.
나는 너를 향해 나아갔고,
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꿈꿨으니까.
히로,
우리는 바다에 함께 있었고,
함께 사라질 운명이었나 봐.
바다를 품은 등불, 히로 : 등대에 남은 마지막 기도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나는 오늘도 저 어둠 너머를 바라본다.눈이 시릴 만큼 검은 바다. 너의 숨이 스러져간 그곳을. 기억하고 있어.내가 처음 등불을 들었던 밤을.조심스러운 발걸음,흔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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