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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Mythology/Fanfiction

바다를 품은 등불, 히로 : 등대에 남은 마지막 기도

by The Fallen Gods 2025. 4. 13.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나는 오늘도 저 어둠 너머를 바라본다.

눈이 시릴 만큼 검은 바다. 너의 숨이 스러져간 그곳을.

 

기억하고 있어.

내가 처음 등불을 들었던 밤을.
조심스러운 발걸음,

흔들리는 손끝,

그리고 그 끝에서 마침내 너를 만났던 순간을.

 

너는 젖은 옷차림으로 내 앞에 나타났지.
떨리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어.

“추웠어도, 너라서 왔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세상을 너로 채워버렸어.
신도, 제의도, 의무도… 다 잊었어.

나는 오직 너의 사람이고 싶었으니까.

 

사람들은 몰랐겠지.

그 맑고 잔잔한 여사제의 눈빛 속에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는 걸.

 

그건 신의 불이 아니었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히 신 앞에서도 숨기지 못한 내 불꽃이었어.

 

하지만 레안드로스, 넌 몰랐지.
내가 매일 밤, 손끝이 다 데일 만큼 등불을 움켜쥐고 있었다는 걸.
성전의 감시를 피해, 숨을 죽이고 바람을 막으며, 네게 향하는 길을 밝혔다는 걸.


너 하나만을 위해 내 모든 날을 바쳤다는 걸.

 

그날 밤…
그날의 바람은 무언가를 예고하고 있었어.
너를 데려갈 운명이 조용히 입을 열었지.


나는 알면서도 등불을 들었어.
빛을 꺼뜨릴 수 없었으니까.
그건 내가 너에게 주는 유일한 길이었고, 나의 마지막 기도였으니까.

 

하지만…
빛은 결국 바람을 이기지 못했어.
흔들리던 불꽃은 순식간에 꺼졌고, 나는 그때야 깨달았지.

 

너는 지금, 길을 잃었다는 걸.

그 후의 밤은 긴 침묵이었어.
등대 아래,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너를 기다렸어.


바다엔 네가 없었고, 모래엔 네 발자국도 남지 않았어.

 

그리고, 며칠 뒤…
너의 몸이 바다에 떠밀려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울었어.
어느 신 앞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었어.

 

왜, 레안드로스.
왜 넌 그렇게까지 나에게 왔던 거야.
사랑해서?
그럼 왜, 나는 너를 살릴 수 없었던 걸까.

이젠 알 것 같아.


내가 매일 등불을 들던 밤은 사실 너를 향한 인도가 아니라,
너를 조금씩 떠나보내는 시간이었다는 걸.
우리의 사랑은 언젠가 이 바다에 삼켜질 운명이었어.


하지만, 내가 등불을 들었던 그 순간만은…
우리가 함께 살아있던 시간이었다고 믿고 싶어.

 

그래서, 이젠 내가 너에게 갈게.
너의 몸이 스러진 그 바다로.
우리의 사랑이 사라진 그 깊은 곳으로.


언젠가, 이 바다 어딘가에서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더 이상 등불이 필요 없는 밤이었으면 좋겠어.
너를 찾아내지 않아도, 곧장 안길 수 있는… 그런 영원이었으면.

 

레안드로스,
이제… 내가 널 따라갈게.


그리고 이 기도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사랑의 등불이 될 거야.

 

 

레안드로스 : 바다를 건넌 사랑의 끝

 

레안드로스 : 바다를 건넌 사랑의 끝

물은 차고 깊었다. 밤마다 너를 만나러 건너는 바다는, 이젠 내 피와 살처럼 익숙했다.나는 헤엄을 쳤고, 헤엄을 치며 기도했지. 파도에 삼켜지지 않길. 어둠에 길을 잃지 않길.오직 너에게, 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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