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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Mythology/Fanfiction

제우스의 연인들 #1 : 구름 속의 울음, 이오

by The Fallen Gods 2025. 4. 16.

하늘은 언제나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정말 하늘에서 왔다면,

그건 아마 번개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따뜻하고 빛나지만, 찢기고 잊히기 쉬운... 그런 목소리.

 

나는 아르고스의 성스러운 제사장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신의 이름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하늘은 나를 다른 눈으로 보았다.

 

그 눈동자엔 연민과 욕망이 뒤섞여 있었고,

나를 향한 숨결은,

기도문이 아닌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이오, 너를 구름으로 감싸면, 아무도 널 보지 못하겠지."

 

그가 말했다.

 

나는 구름 속에서 그를 보았다.

태양보다 밝은, 그러나 그 어떤 그늘보다 더 깊은 존재.
그의 손이 내 뺨에 닿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제우스가 '신'이기 이전에 '남자'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엔 항상 또 다른 눈이 있었다.


그 눈은 나보다 오래, 나보다 깊이 제우스를 지켜본 눈.

그의 아내, 여왕, 하늘의 여신—헤라.

그녀는 나를 단 한 번 보고,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그날 밤, 나는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내 두 다리는 축 늘어졌고, 내 목에선 울음 대신 음메 소리가 났다.

나는 더 이상 '이오'가 아니었다.

 

나는 암소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신이 준 사랑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라는 것을.

 

그 무게는 나를 사람에서 짐승으로 바꾸었고, 내 이름을 구름 아래로 감추었다.

아르고스—

백 개의 눈을 가진 감시자.
그는 나를 늘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감시였고, 연민도 아니었다. 내 울음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오직 제우스만이, 내 고통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보낸 건 자신이 아닌, 헤르메스였다.


말을 잘하고, 미소를 가진 신.

그가 연주한 피리는 아르고스를 잠들게 했고, 나는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헤라가 다시 나를 찾기 전까지의 자유였다.

 

나는 다시 달아났고, 바다를 건넜고, 강을 건넜다.
하늘은 멀고, 땅은 낯설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

이오였던 기억이 점점 지워질수록, 나는 오히려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다 나는 닿을 수 없는 곳, 나일 강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신탁이 내게 말했다.

"너는 언젠가 다시 인간이 될 것이다. 너의 자손은 위대한 자가 될 것이다."

 

그 말은 축복이었을까, 위로였을까?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그날 구름 속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를 떠올린다.

"이오, 널 감싸는 이 구름은 사랑이야."

 

그 사랑은... 결국 나를 잃게 했지만, 어쩌면 그 조각 하나는 아직도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바람을 따라 걷는다.
나의 이름을 다시 찾기 위해, 나의 울음을 되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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